순수와 변질.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촛불문화제 혹은 시위에 대한 글을 써본다.

촛불시위가 벌써 2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누군가는 촛불시위 때문에 관광객들이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외국인의 여행 욕구를 그토록 챙기는 분이 내국인의 먹거리 욕구는 외면하는 현실에 욕이 목구멍까지 치솟지만 입만 더러워질 듯 하여 참아본다.

촛불시위가 길어지면서 초기의 목적과 달리 변질되었다고 한다. 예컨대 초기에는 광우병 소고기에 대한 우려로 모였지만 이제는 정권퇴진을 주장하고 초기에는 중고생들이 나섰지만 이제는 어른들 그 중에서도 '다함께' '한총련' '민노당' 등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이들이 나섬으로써 변질되었다고 한다. 또 처음에는 조용히 앉아서 촛불만 불지르던 시민들이 이제는 변질되어 청와대로 거리행진을 하고 전경들과 대치 더 나아가 전경들에 대한 폭력등을 행사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우리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유통기한 지난 우유 취급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 변질이란게 무엇일까? 과연 시위에 있어 변질이라는게 존재하기는 한 걸까? 나는 이런 의문을 도저히 떨쳐버리지 못하겠다. 시위를 하는데 도대체 순수할 수 있는 것일까? 먹거리를 걱정하여 광우병 소고기를 반대하면 순수한 것이고 생활비 걱정해서 공기업 민영화 반대하면 변질된 것인가? 시청앞 광장에서 애꿎은 촛불만 불지르고 앉아 있으면 순수한 것이고 국민의 요구에 귀기울이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귀를 닫은 어떤 병신에게 찾아가겠다고 하면 변질된 것인가? 일반 시민들이 어중이떠중이 개인자격으로 참가하면 순수한 것이고 특정 시민단체 혹은 특정 정당 관련자들이 참가하면 변질된 것인가? 어디서부터 이런 이분법이 튀어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시위라는 건 어디까지나 매우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서 촉발된다. 광우병 소고기 문제를 가지고 시위가 시작된 것은 그것을 먹기 싫다는 극히 이기적인 이유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시위 초기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였고 모 인물의 또다른 행동들이 옳지 못하다는 판단이 더해지면서 다른 요구들이 표출되었다. 그것은 매우 순수하게 이기적이고 가치판단적인 문제이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순수와 변질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할 말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조건 '까고 보자'는 식의 꼬투리 잡기는 병진 짓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의 생각이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도 번지는 것이다. 글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나는 광우병 소고기를 내가 먹기 싫어서 시위에 참가한 것일까 남들이 행여 광우병 소고기를 먹을까봐 시위에 참가한 것일까. 답은 자명하다. 내가 먹기 싫고 내 가족이 먹지 말았으면 했기 때문에 시위에 참가한 것이다. 시위는 어디까지나 내 요구가 받아들여지길 원해서 하는 것이다. 남의 요구를 대변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자문하면 내 요구가 변질되었는가? 결코 변질되지 않았다. 내 요구는 여전히 그대로이며 또 다른 요구가 추가된 것 뿐이다. 그리고 처음의 요구도 추가된 새로운 요구도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by revolver | 2008/06/27 13:17 | 대하여 | 트랙백 | 덧글(0)

GMO 괴담?

'GMO 괴담' 식품업계는 딜레마 - 소비자는 GMO 0% 원하지만 원가 부담
'GMO 괴담' 식품업계는 딜레마 - "소나기는 피해야죠" 소비자단체 압력에 업계 곤혹

소고기 관련 문제로 인해 이제는 '괴담'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광우병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근거에도 '괴담'으로 몰아붙이더니 이제는 GMO에 대한 과학적 근거에도 '괴담'으로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대한민국은 더이상 과학에 근거하지 않고 괴담에 근거하는 나라가 되어버린 듯 보인다.

GMO에 대한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와 관련 나 역시 우스운 글이긴 하지만 하나 남긴 적이 있다. 이는 결단코 '괴담'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그런데 그 '과학'을 '괴담'으로 치부하는 현상황은 '과학'을 믿지 않는 것이 옳다는 어떤 종교적 신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아스러움까지 낳는다.

위의 두 기사는 한국경제에 올라온 기사다. 그런데 웃기는 건 한국경제 홈페이지에서 'GMO'라는 검색어로 검색했을 때 뜨는 기사들 중 바로 아래 ['밥상 글로벌화는 살인화' 인간 살충 GM작물 당신 목숨 노린다.]라는 기사가 떡하니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적 분석 위에 국민정서'는 오히려 한국경제 혹은 한국경제가 지지하는 어떤 부류들에게 '과학적 분석 위에 국민우롱'이라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by revolver | 2008/06/25 21:32 | 신문보기 | 트랙백 | 덧글(0)

촛불 문화제에 대하여

지방에서 사는 관계로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촛불 집회. 개인적인 일들을 대충(너무 대충) 마무리 해놓고 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KTX는 잠자기 불편해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보며 자랑스러웠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독재정부 아래에서도 민주정부 아래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민주적 절차를 가진 정부라 하더라도 그건 민주정부가 아니라 생각한다. 어쨌건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당시 느낀 것들을 대충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시위는 평화로워야 하는가 격렬해야 하는가.

밤을 새워가며 하는 시위에서 시민들 간의 대립이 있었다. 평화롭게 집회를 이어가야 한다는 쪽과 행진을 가로 막으니 평화롭게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쪽의 대립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시민간의 싸움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평화로운 시위를 주장하는 쪽의 주장처럼 평화롭게 목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거나 시위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구호나 외칠거면 인터넷에서 기사에 댓글이나 달아야 하고 노래나 부를 거면 가라오케에 가는 것이 더 좋다.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나는 시위가 평화로워서 이룰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지난 한 달동안 평화로운 시위를 통해 과연 현 정부가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를 돌아본다면 답은 나와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말이 결코 맹목적으로 시위를 격렬하게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맹목적으로 격렬하게 나간다면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많은 현재의 시위에서 결코 호응을 얻어내기 힘들다. 시위에서 승패는 시민들의 호응 여부에 달려있는데 가족단위 참가자들은 폭력적 시위에서 등을 돌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경찰이 선수치기 전에는 결코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시위가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밝았는데도 해산하지 않고 여전히 지치지 않은 기세로 이어나간다면 경찰 쪽의 대응은 어떨까? 지난 밤처럼 단순히 경찰차를 도로에 주차해놓고 멍때리는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어떤 형태로든 강제 해산을 시도하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시위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될 것이다. 한 마디로, 선빵을 먼저 날리지 않고 정당방위가 성립될 때까지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전략적으로 사고 행동해야 한다.

2. 시위에 있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 광우병 때문에 시위가 촉발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광우병 이외의 문제들에도 그것을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시위 현장에서 나온다. 이러한 모습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결코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정부가 우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 원하는 것이지 가렵지도 않은 곳을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위기에 편승하여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각자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정책들에 대해 따져보고 그것이 내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지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을 때 거리로 나와야 한다. 물론 거리로 나와 주변의 의견을 들은 다음에 결정할 수도 있다.

내가 목적을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새벽에 보았던 한 중학생 남자아이 때문이다. 이곳 저곳을 왔다갔다 하던 나는 갑작스런 소란을 들었다. 폭력 시위로 변질되었다고 하는 닭장차의 철창을 걷어 내고 유리창을 부수던 곳에서 발생한 시민간의 소요였다. 무슨일인지 궁금했지만 다리가 피곤했던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그 소요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내 앞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소용의 내용은 이렇다. 중학생 소년은 어른들 보다 열정적으로 전경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물병을 던지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얘기에 따르면 그 소년은 3일 연속 참여했는데 꾸준히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주변의 시민들은 그런 행동을 제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 날은 한 시민이 이런 모습이 옳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그 소년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소요가 발생한 것이었다.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 그 소년에게 광우병이란 위험성이 그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을 일으킬 계기가 되었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좀더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저 친구는 혹시 평소에 상당한 억눌림을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내 의문이 사실이고 그래서 그 억눌림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위를 선택했다면 이는 상당히 문제가 된다.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시위의 본질은 흐려지고 현재의 시위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를 연출하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3. 조직화는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하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현재 시위는 조직이 없는 시위라고 할 수 있다. 무대 진행을 하고 촛불을 나눠주고 새벽에 김밥을 나눠주고 하는 단체 등 여러 단체들이 시위에 참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일한 조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것이 꼭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예컨대 앞서 말한 시민들 간의 대립과 소년으로 대표되는 부류들이다. '시위 폭력으로 얼룩져'라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나오게 될때 우리는 과연 일부 시민의 과격행동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 있을까? 이것은 참가한 당사자들만이 아는 것일 뿐이다.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미참가 시민들은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사실만을 인지할 뿐이다.

그렇다면 조직화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매우 조심스럽기 그지 없다. 통합적인 조직의 출현은 곧바로 배후세력의 중추로 인식될 우려가 있으며 평화적일 것이냐 폭력을 불사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에 있어서도 미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당할 정도로 쇠퇴한 운동권 진영에서 이를 하나의 계기로 인식하고 영향력 확대를 꾸밀 우려도 있다. 하루하루의 촛불문화제에만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만큼 앞으로의 시위를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매일같이 촛불들고 시청앞에서 자유발언하다가 청와대로 향한답시고 조금 거리행진 하다가 가로막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by revolver | 2008/06/09 01:41 | 대하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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