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의 신상공개를 반대한다

범할 수 없는 인권이 존재한다. 이것은 감정과는 별개의 문제다. 감정적으로 상대의 인권을 무시하고 싶은 시간은 무수히 많지만 그런 욕구를 언제나 표출할 수 없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권이라는 것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인권을 범죄자라는 이유만으로 강탈한다는 것은 '범죄자는 인간이 아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묻고 싶다. 만약 강호순이란 인물을 정당한 법절차 없이 누군가가 임의의 처벌을 내렸다면 그 누군가를 '정의'란 이름으로 추앙해 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유영철이 상당수의 살인을 저질렀는데 강호순이 유영철을 살해했을 경우 그 행위를 정당하다고 인정해 줄 수 있는가. 이것은 나에겐 불가능한 상황이다. 범죄자에 대해 법적인 처벌을 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범죄자의 주변인물에게는 인권이 없는가? 기사에 따르면 강호순은 아들을 위해 책을 쓸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또한 그의 친형을 취재한 기사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호순이란 인물을 밝힘으로 인해서 벌써 두 명의 인물이 그와 관련한 인물로 떠올랐다. 이들의 인권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유명한 연예인들의 경우 그들의 자녀들이 매스컴을 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은 자신의 유명세로 인하여 자녀들이 의도치 않게 겪게 될 유명세를 경계하는 움직임이다. 그들은 연예인으로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자녀들이 유명세를 겪는 것조차 반대한다. 하물며 강호순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인물이 얼굴과 이름이 밝혀짐으로 인해서 그의 주변인물들이 유명세를 겪는 것 또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강호순의 인권과는 별도의 것이다.

 

  인간의 범죄 행각 혹은 비도덕적인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강호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스스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는 자부심으로 그동안 '인권'개념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적 장치들을 고안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한 범죄자로 인해 모조리 허물어져야 하는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씁쓸하다.

by revolver | 2009/02/04 00:45 | 대하여 | 트랙백 | 덧글(0)

용산 참사, 정부는 철거민을 반항기 소년으로 바라보는가?

용산 참사로 한 동안 시끄럽더니 시간이 지나 조금 잠잠해지는 듯한 모습이다.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진보언론은 강경진압을 한 경찰측을 공격하고 보수언론은 강성투쟁을 한 철거민들과 전철연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그러던 일이니 그러려니 할 뿐 이들 언론에 대한 화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가지 지적할 것은 재개발을 하는 절차에 대한 지적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나 역시 재개발 절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번 사건이나 그 이전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현행 절차의 문제점은 세입자들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상금 등을 두고 벌어지는 실랑이가 급기야 큰 갈등이 되고 이번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법이란 것이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데 현행법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이번 참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예컨대 세입자들의 박탈감을 크게 만드는 권리금이라는 것을 현행법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대단한 문제다.

정부에서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그 땅에서 떠나야할 사람들에게 그 땅에서 마땅히 누려왔던 것들 중 일부만 보장해 준다고 가정한다면 그 누구도 즐거워할 수 없을 것이다.

마땅히 누려왔던 것들을 제대로 보장도 해주지 않으면서 나가라고 하는 행태.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을 공권력에 대해 반항하는 사춘기 소년으로 매도하는 행태는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by revolver | 2009/01/29 19:23 | 대하여 | 트랙백(1) | 덧글(0)

경제불안을 조장하는 미네르바?

국가가 개인의 입을 봉쇄하고자 시도한 이번 사건을 보면서 들었던 한가지 생각.

폴 크루그먼은 한국이 97년 외환위기가 오기 전 이미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를 진단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여기에 크게 동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 폴 크루그먼은 쓸데없이 경제불안을 조장하였던 것일까?

폴 크루그먼의 이런 경제위기 진단 이후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쳤다.

결국, 현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세계적인 석학인 폴 크루그먼이 경제불안을 조장하여 경제위기가 닥쳤다'고 97년 외환위기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 10년이 지난 이제서야 97년 외환위기를 명쾌하게 증명하는 논리가 발견되다니 이명박 정부는 정말 대단하다.

이러니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를 자격이 현 정부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by revolver | 2008/11/19 20:25 | 대하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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